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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 들어서자 만해 한용운의 동상과 ‘나룻배와 행인’ 시비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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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영서와 영동의 경계에 이르는 영북의 중심이자 북한강 물줄기의 원천이다. 양양과 속초, 인제에 걸쳐 1708m의 대청봉까지, 국립공원 구역은 다양한 식물종이 분포하고 있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 지역이자 강원 생태자원의 상징으로 꼽힌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로부터 여러 문인이 안거하 바다이야기룰 며 사유를 확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세조 때 생육신 중 하나인 김시습은 내설악 오세암에 머물며 일생을 돌아봤다. 출가해 승려가 되기도 했던 그는 유교와 불교를 섭렵하며 주옥같은 시문들을 남겼다. 여초 김응현 서예가의 12대조인 유학자 김창흡도 설악산에 은거하거나 오가며 유람문학을 이어간 조선 후기 최고의 시인으로 바다이야기슬롯 통한다. 그리고 한국 현대시의 위대한 이정표 불리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서 쓰여 1926년 발간됐다. 만해 이후에는 한국 시조의 세계화를 일으킨 설악 무산 조오현이 만해의 뜻을 기리는 일에 열중했다. 설악산 백담사는 험준한 산세로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곳이지만, 2028년 동서고속철 백담역 개통으로 인해 사람들의 방문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백담사와 인제군은 올해 말 개관을 목표로 ‘설악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 설악의 문학적 자산은 더욱 풍부해 질 예정이다.
강원도민일보는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을 맞아 만해 한용운의 삶과 설악의 생태문화적 자산을 되돌아보는 ‘님의 침묵 100년, 만해와 설악’을 연재한다.
한국 현대시의 진정한 출발점 백년을 이어온 만해의 사랑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만해 한용운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894년, 열여섯이 되던 해 소년 한유천(한용운)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한용운의 부친이자 유학자인 한응준이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세한 것이다. 1896년 유천은 세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자 인제 백담사 등을 전전했고 불경을 공부하며 다양한 서양 근대사상을 접했다. 서구 문물을 접하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04년 한용운은 고향 홍성으로 돌아왔지만 임신한 아내 전정숙을 두고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오대산 월정사로 향했지만 찾던 스승이 없자 인제 백담사로 발길을 돌린다. 한겨울 평창과 홍천의 험준한 산세를 넘어 도착한 설악산은 만해의 사상적 역량을 응축시키는 은거지이자 용광로였다. 만해는 백담사를 비롯해 금강산 유점사와 고성 건봉사를 오가는 등 영동 북부를 근거지로 삼아 수행 기반을 다졌다.
1908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4개월간 체류하며 도쿄, 교토 등의 사찰을 연구했다. 이후 백담사에서 집필, 근대 불교의 개혁을 주장한 ‘조선불교유신론’을 1913년에 발표했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는 고려대장경을 열람, 불교 경전을 낱낱이 연구해 현대 상황과 맞춰 쓴 ‘불교대전’을 펴냈다. 1918년 계몽 잡지 ‘유심’을 창간했으며 이듬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기미독립선언에 참여했다. 이중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약 3장을 직접 작성, 3년간의 옥고를 치른다.
설악(雪嶽)은 이름 그대로 눈 덮인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에 내린 눈이 하지에 이르러서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불린다”고 기록돼 있다. 태백산맥의 중심부이자 대륙과 해양의 기후의 경계에 있는 설악은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다.
동해를 향한 바깥 부분이 험난한 외풍을 막아주는 ‘드러냄’의 공간이라면, 깊은 계곡 안으로 자신을 숨기는 내륙은 ‘성찰’의 공간이다. 고산 생태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설악산은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들에게도 문명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안식처일 것이다.
한 해가 가기 전 2025년의 마지막 날, 설악산 백담사로 발길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2시간 남짓, 환경 보호를 위해 개인 차량 출입이 제한된 길을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올랐다.
셔틀버스는 인제군 장학회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도보전용 탐방로를 조성해 걷기에도 안성맞춤인 코스다. 버스 창 너머로 절벽 아래 흰색의 암석들이 보였다. 씩씩한 산줄기가 이어지고 기암괴석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그토록 굽이진 산길은 처음이었다. 가장 춥고도 깊은 산골, 설악은 옥고를 치른 후 만해를 품은 공간이자 고독과 침묵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거처였다. 1925년 여름 만해는 오세암에서 자신의 주요 저서인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 두 권을 저술한다. ‘십현담 주해’는 만해가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를 읽으며 중국 선종 게송의 걸작인 ‘십현담’에 자신의 주해를 덧붙인 책이다. 설악의 적막 속에서 만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국문학의 결정적 위치를 점하는 ‘님의 침묵’의 배경에 근본적인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볼 뿐이다.
▲ 백담사 앞 무수한 소원이 쌓인 돌탑들.
춘천 책과 인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님의 침묵’ 초판본은 국내 문학서적 중 최고가에 이르는 1억 5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님의 침묵’ 의문학적 가치는 가격으로 환산될 수 없을 만큼 높다.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본지와의 대담에서 “1925년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1926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발간은 한국 현대시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평했다. 만해는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며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등불이었다.
백담사에 도착하자, ‘님’을 향한 무수한 소원이 담긴 돌탑이 쌓여있었고 안온한 분위기가 탐방객들을 반겼다. 한용운의 동상과 ‘나룻배와 행인’ 시비도 볼 수 있었으나 사찰 내 만해기념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만해마을에 위치한 만해문학박물관 또한 전시자료 교체작업으로 임시 휴관 중이었다. 혹시 오세암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산중의 밤은 일찍 찾아 오기에 그가 기거했던 가장 깊은 암자에 가는 길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영하에 이르는 차가운 바람과 얼어붙은 땅 위, 적막 가운데 들리는 물소리는 무언가를 향한 깨달음을 주는 것만 같았다. 자연은 함부로 속살을 꺼내지 않는다. 만해는 이곳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강물은 소양강과 북한강으로 합류해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만해의 정신 또한 100년의 시간을 흘러 우리 곁에 도착해 있다. 김진형 기자
#백담사 #한용운 #현대시 #설악산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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