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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야 잘 자라고 거에요. 시비를 내가 듯한홍수정 김포바울초대교회 목사가 공동목회로 시무하는 경기도 김포의 교회 예배당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포=신석현 포토그래퍼
태생부터 존재를 철저히 감춰야 했다. 승려 아버지와 비구니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채 유랑하듯 성장하며 깊은 상처와 방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전환점을 맞았다. 부모에게 외면당했던 상처는 이제 그를 이끄는 거룩한 소명이자 사명으로 바뀌었다. 위기 청소년들의 곁을 지키는 동행자로 살아가는 홍수정(55) 목사는 경기도 김포바울초대교회에서 기자와 바다신2릴게임 만나 비극을 희망으로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승려 아버지, 비구니가 된 어머니
홍 목사의 출생은 그 자체로 비밀이었다. 1970년 1월 조계종 소속 승려였던 아버지와 전화 교환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릴게임손오공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에 아버지가 마음을 뺏기면서 시작됐지만, 그 사랑의 결실은 축복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형제 4명 중 3명이 승려였고, 종단 내에서 기대가 컸던 인물이었다. 자녀의 존재가 드러나면 승적이 박탈될 위험이 있기에 어머니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몰래 그를 낳았다. 호적은 큰아버지 밑으로 올려졌고 그는 태어나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는 순간부터 철저히 숨겨진 존재가 됐다.
홍 목사는 “어머니는 내가 젖을 떼자마자 ‘등잔 밑이 어둡다’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비구니의 길을 선택했다”며 “나를 지키기 위해 여자의 삶을 포기하고 산사로 숨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로운 방랑자
바다이야기부활
어린 시절 그를 거둔 이는 외할머니였다. 두 사람은 계룡산 일대의 무속인 집과 폐가를 전전하며 고단한 유랑 생활을 이어갔다. 홍 목사는 “내 존재를 감춰야 했기에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1년에 두 번, 많게는 세 번씩 이사를 다녔다”며 “친구를 사귀기보다 세상과 거리 두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했다.
바다이야기디시 중학생 시절 동네가 아닌 외딴 암자에서 지낼 때도 평범한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소풍날 학교에서 몰래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에 할머니에게 종아리에 피가 맺힐 만큼 매를 맞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사진조차 존재의 증거가 될 수 있었기에 내 어린 시절의 기록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는 남다른 손재주로 연등을 만들며 동국대 불교학과 진학이라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토록 열망했던 길은 역설적이게도 어머니의 존재를 마주한 순간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출생이 곧 감춰야 할 치부이자 부정해야 할 과거였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부재가 당연한 삶이었지만, 어느 날 하굣길에 ‘엄마,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문득 ‘왜 나에게는 엄마가 없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곤 했다”고 회상했다.
억눌러왔던 질문을 품고 암자로 돌아와 엄마의 존재를 묻자 외할머니는 “저기서 목탁을 두드리는 여자가 네 어미”라고 말했다. 늘 곁에서 ‘비구니 이모’라 부르며 따랐던 여인이 사실은 친모였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 순간 마주한 진실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고, 이후 오랫동안 깊은 혼란과 지울 수 없는 상처 속에 살아야 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을 파멸시킨 삶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홍 목사의 반항심은 들불처럼 번졌다. 법당에서 어머니가 목탁을 두드릴 때면 그는 보란 듯 방 안의 TV 볼륨을 높여 기독교 방송을 틀었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법당에 울려 퍼질 때마다 외할머니와 보살들이 달려와 TV를 껐고 그럴 때면 그는 108배와 법당 청소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공부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그는 ‘인생을 망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복수’라 믿었다. 암자를 떠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삶을 방치했다. 수면제를 삼킨 적도 있었고 연탄가스 사고를 겪은 적도 있었다. 차량이 폐차될 정도의 대형 사고를 당하면서도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홍 목사는 “돌이켜보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생명이 이어진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주지 승려가 된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 마주한 아버지는 “보고 싶었고 미안하다”고 고백하며 “병약해진 자신을 도와달라”며 그를 비서로 채용했다. 6개월간 짧은 동행 동안 아버지는 남들 몰래 음식을 해주며 “늘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애틋함을 전했지만, 존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고모(비구니)의 반대로 그는 다시 쫓겨나듯 아버지의 곁을 떠나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훗날 아버지는 원하던 종단의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어둠에서 빛으로
결혼 후에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홍 목사는 결혼식 혼주석에 어머니를 앉히지 않을 만큼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계기는 남편 지인의 권유로 참석한 교회 전도집회였다. 아들의 잦은 병치레로 절박했던 그는 “교회에서 난생처음 존재 자체로 환대받으며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목사님의 권유로 매일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어느 날, 말씀이 마치 빛처럼 다가와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확증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자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고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2012년 신학대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가장 깊은 상처와 마주했다. 홍 목사는 “치유의 시간을 통해 ‘어머니를 용서하게 해달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다”며 “그제야 사랑받지 못한 채 자식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비참한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홍 목사의 어머니가 지난 14일 경북 울진의 한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다.
용서는 회복으로 이어졌다. 홍 목사는 주지 승려로 은퇴한 어머니를 끈기 있게 전도했다. 처음에는 “종교만큼은 각자의 길을 가자”며 선을 그었던 어머니였지만 딸의 기도는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 홍 목사는 “과거 어머니의 눈물이 억울함의 산물이었다면 지금 흘리는 눈물은 회개와 감사의 고백”이라며 “현재 어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딸과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는 든든한 신앙의 동역자가 됐다”고 전했다.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신 하나님
홍 목사가 지난해 5월 김포바울초대교회 주일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현재 홍 목사는 바울초대교회에서 신바울 목사와 공동 담임을 맡아 다음세대를 세우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교회가 설립한 ‘더복음공동체 미니스트리’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의 보호자이자 멘토가 돼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홍 목사가 교회 대안학교 채플 시간에 다음세대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
홍 목사는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는 것 같다”며 “나와 닮은 아픔을 지닌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내 소명이자 사역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홍 목사와 함께 성경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의 상처를 씻어낸다.
사역의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의 내면에 깊게 박힌 쓴 뿌리가 걷히는 순간이다. 그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영혼과 삶이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상처 많았던 나의 유년 시절도 함께 위로받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날은 결국 지금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빚으신 연단의 시간이었다”며 “내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신 하나님 앞에서, 맡겨주신 아이들과 끝까지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김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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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존재를 철저히 감춰야 했다. 승려 아버지와 비구니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채 유랑하듯 성장하며 깊은 상처와 방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전환점을 맞았다. 부모에게 외면당했던 상처는 이제 그를 이끄는 거룩한 소명이자 사명으로 바뀌었다. 위기 청소년들의 곁을 지키는 동행자로 살아가는 홍수정(55) 목사는 경기도 김포바울초대교회에서 기자와 바다신2릴게임 만나 비극을 희망으로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승려 아버지, 비구니가 된 어머니
홍 목사의 출생은 그 자체로 비밀이었다. 1970년 1월 조계종 소속 승려였던 아버지와 전화 교환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릴게임손오공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에 아버지가 마음을 뺏기면서 시작됐지만, 그 사랑의 결실은 축복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형제 4명 중 3명이 승려였고, 종단 내에서 기대가 컸던 인물이었다. 자녀의 존재가 드러나면 승적이 박탈될 위험이 있기에 어머니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몰래 그를 낳았다. 호적은 큰아버지 밑으로 올려졌고 그는 태어나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는 순간부터 철저히 숨겨진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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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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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를 거둔 이는 외할머니였다. 두 사람은 계룡산 일대의 무속인 집과 폐가를 전전하며 고단한 유랑 생활을 이어갔다. 홍 목사는 “내 존재를 감춰야 했기에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1년에 두 번, 많게는 세 번씩 이사를 다녔다”며 “친구를 사귀기보다 세상과 거리 두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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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빛으로
결혼 후에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홍 목사는 결혼식 혼주석에 어머니를 앉히지 않을 만큼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계기는 남편 지인의 권유로 참석한 교회 전도집회였다. 아들의 잦은 병치레로 절박했던 그는 “교회에서 난생처음 존재 자체로 환대받으며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목사님의 권유로 매일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어느 날, 말씀이 마치 빛처럼 다가와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확증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자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고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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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목사의 어머니가 지난 14일 경북 울진의 한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다.
용서는 회복으로 이어졌다. 홍 목사는 주지 승려로 은퇴한 어머니를 끈기 있게 전도했다. 처음에는 “종교만큼은 각자의 길을 가자”며 선을 그었던 어머니였지만 딸의 기도는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 홍 목사는 “과거 어머니의 눈물이 억울함의 산물이었다면 지금 흘리는 눈물은 회개와 감사의 고백”이라며 “현재 어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딸과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는 든든한 신앙의 동역자가 됐다”고 전했다.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신 하나님
홍 목사가 지난해 5월 김포바울초대교회 주일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현재 홍 목사는 바울초대교회에서 신바울 목사와 공동 담임을 맡아 다음세대를 세우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교회가 설립한 ‘더복음공동체 미니스트리’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의 보호자이자 멘토가 돼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홍 목사가 교회 대안학교 채플 시간에 다음세대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
홍 목사는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는 것 같다”며 “나와 닮은 아픔을 지닌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내 소명이자 사역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홍 목사와 함께 성경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의 상처를 씻어낸다.
사역의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의 내면에 깊게 박힌 쓴 뿌리가 걷히는 순간이다. 그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영혼과 삶이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상처 많았던 나의 유년 시절도 함께 위로받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날은 결국 지금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빚으신 연단의 시간이었다”며 “내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신 하나님 앞에서, 맡겨주신 아이들과 끝까지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김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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